
[ 배드민턴의 기원과 발전 ]
배드민턴의 기원과 우리나라 배드민턴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배드민턴의 기원 ]
배드민턴의 시초는 '푸나' 게임
고대 중국에서는 '바톨둘'이라는 유희가 성행했었는데 그 방법은 장식이 달린 1개의 공을 널조각으로 서로 쳐서 보내는 놀이인데, 공은 오늘날의 셔틀콕과 같은 비행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며 여기서 배드민턴의 기원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왕실의 기록에는 12세기경에 이미 배드민턴과 비슷한 게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고휘지 미술관에 소장되어 18세기경 차알린의 그림과, 덴마크의 화가 야곱 무니히가 그린 국왕 프레드릭 7세의 왕자 때의 모습의 그림에서 당시의 라켓과 셔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드민턴은 본래 인도 봄베이주 푸나(poona)에서 행하여졌던 놀이의 하나였는데 이것을 영국의 주둔군이었던 어떤 장교가 1013년에 본국으로 가져가 소개한 게 시초였습니다.
영국에서는 그로스타주의 영주 보포트 공작이 이 게임에 굉장히 열성이어서 게임의 명칭도 공작의 저택의 이름을 따서 ‘배드민턴'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게임 방법도 차츰 정리되었습니다.
포트 공작의 저택인 '배드민턴'에서는 정기적으로 게임을 가졌으며 당시의 배드민턴 게임은 귀족의 게임으로서 매너가 대단히 엄격하여 높은 컬러가 붙은 셔츠에 윗옷을 단정히 입고 실크헷을 쓴, 신사의 복장으로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배드민턴의 높은 품격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 경기의 뼈대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너 면으로 매우 엄격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후 영국에서 유럽 여러 나라로 보급되었으며 이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남아시아 각국이 배드민턴의 공식경기에 참가하게 되면서부터 품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종래의 우아한 경기에서 스테미너와 다이나믹한 플레이가 심한 경기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단식경기에 있어서 지구력과 컨트롤의 경기이며, 복식경기에 있어서는 스피드와 공격력이 주가 된 플레이라고 하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국제배드민턴연맹(International Badminton Federation = IBF)은 1934년에 창설되었으며, 영국(1893년), 캐나다(1921년), 뉴질랜드(1927년), 덴마크(1893년), 네덜란드(1931년), 프랑스(1934년) 등 9개국에서 결성됐습니다. 그리하여 1948년부터 남자(토마스 컵), 1956년부터 여자(유버 컵)의 양 세계 선수권대회를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서 약 59 여개국 이 I.B.F에 가맹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의 도입과 발전
배드민턴이 한국에 들어오기는 최근의 일입니다. 1957년, 당시 대한체육회에 있던 이윤용, 숙명여대의 장영완 교수 등의 힘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조직됨으로써 비로소 한국의 배드민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배드민턴이 소개되어 있었긴 하지만 그때까지는 경기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놀이 정도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그 후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중심으로 많은 체육 지도자의 끊임없는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놀라운 보급과 발전을 보았습니다.
국제 시합에서도 1966년 제4회 방콕 아시아대회 때는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 배드민턴의 앞날을 밝게 해 주었습니다.
1968년 제4회 국제 학생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일본 도쿄)에서 준우승, 1969년 제2회 아시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마닐라)에서는 여자복식 결승에서 홍콩을 꺾고 선수권을 따냈고, 주니어 여자단식 결승에서도 한국끼리 패권을 다투는 독무대가 되어 기염을 토했습니다.
1970년 12월, 방콕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의 여자 단체전에서도 동메 달을 따냈고 1971년 8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배드민턴대회에서는 남자 선수들도 처녀 출전하여 7위, 여자단식에서는 세계 선수권자와 겨뤄 아깝게도 은메달에 머물렀고 복식에서는 동메달을 차지하였습니다.
1977년 국제배드민턴연맹(I.B.F)의 결정에 대한 불만으로 I.B.F에 대항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 배드민턴연맹(W.B.F)이 결성되자 이에 가입하였고, 1978년 제1회 세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에서 개인 단식 및 복식에 3위로 입상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전을 거듭한 결과, 1981년 1월에는 국제배드민턴연맹이 개최하는 대회 중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제71회 전영 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의 황선애가 개인 단식 1위를 함으로써 한국의 배드민턴 수준이 세계 정상급임을 입증하였고, 여자 복식도 김연자, 유상희가 3위에 입상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배드민턴은 세계 정상급의 수준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배드민턴의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해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배드민턴의 기원과 우리나라 배드민턴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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