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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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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구의-유래-포스터-사진
    [ 족구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

     

    [ 족구의 유래 ]

    최근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족구에 대한 룰 뿐만 아니라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도 궁금한 사람들이 많아져 족구의 유래에 대해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록을 통한 족구의 유래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삼국시대에 ‘축국'이라는 공놀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김유신(595~673년)과 김춘추(태종무열왕, 604~661년)가 축국을 하다 그의 옷자락을 밟는 바람에 김춘추의 옷고름이 찢어졌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 드라마에서 축국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국고대 기록 중에는 왕운성의 축국도보에 의하면 양쪽에 골문을 설치한 경기와 구장이 없이 하는 축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나라지방을 중심으로 축국 보존회가 있으며 축국 축제(게마리 마츠리)도 있습니다. 축국 축제에서 많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동그랗게 둘러서서 공을 주고조받는 축국 시범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좀더 체계화되어 '족구'라는 이름으로 발전시켜 이어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정한 구장이 없이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축국은 1~9인장까지 있는데 혼자서 차는 것을 1인장이라 하고, 사람 수에 따라서 2인장, 3인장, 4인장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 수에 맞춰 순서대로 서로 번갈아 돌려가며 차는 경기로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는 사람이 지는 경기였다고 합니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즐긴 것은 2인장 축국이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족구의 유래로 보고 있으며,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축구의 유래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역사 자체가 달라질 것은 없으나 족구나 축구나 모두 발로 공을 차는 경기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종목의 유래라고 정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족구든 축구든 지금의 룰과 당시의 공놀이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돌려가며 차는 것을 보면 족구와 더 가까운 경기였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어느 종목의 유래이냐를 떠나 옛날 우리조상 때부터 이러한 공놀이를 해왔다는 것이고, 이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의 족구나 축구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유래를 든다면 고유 민속놀이인 제기차기를 들 수 있습니다. 족구의 기본기 훈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훈련이 제기차기입니다.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많이 차는 놀이인 제기차기와 공을 떨어뜨리지 않거나 원하는 위치에 떨어뜨려 상대 방에 넘기는 족구는 룰이 다를 뿐이지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제기 대신 공을 이용한 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족구인들이 몸을 풀 때, 여러 명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공을 차는 모습도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제기를 차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족구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한 부분들입니다. 정확히 "이것이 족구의 시초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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